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 간섭기 (문단 편집) ==== 강제 징병과 징용 ==== 고려 백성들은 삼별초 토벌과 일본 원정을 위한 징용과 징병을 강제당했는데, 변변찮은 전투 병력이 없던 고려는 이 과정에서 민간인들을 징발당하였다. 또한 원정이 없는 기간에도 원나라를 위한 각종 노역에 징발당하였다. 주요 내용 몇 가지만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wiki style="text-align:center; border: 2px solid #000; background-color:#00A; margin:0 auto; display:table" {{{#!wiki style="padding:5px" '''{{{#white 강제 징병과 징용 관련 사료}}}'''}}}{{{#!wiki style="background-color:#FFF;color:#1208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8월. 대장군(大將軍) 최동수(崔東秀)를 오도지(吾都止)와 함께 몽고에 보내 보고하게 하였는데, 대략 내용에 이르기를,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는 전성기에도 인구가 오히려 적었고, 하물며 신묘년(1231)부터 30년간 전쟁과 전염병이 계속되어 사망자가 매우 많았습니다. 현재 호적에 올라있는 남은 백성도 겨우 농사에 복귀하였으며, 군대에 소속된 사람들도 건장하고 날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황제의 명령을 어기기 어려우므로 다방면으로 징발하여 겨우 1만 명을 확보하였고, 전함은 이미 연해의 관리에게 맡겨서 재목을 마련하여 건조하기 시작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ㅡ 1268년 8월 ㅡ >[[http://db.history.go.kr/id/kr_026r_0050_0100_0020|몽고가 톡토르를 보내 병력과 병선을 검열하다]] >몽고(蒙古)에서 주부개(周夫介)를 보내어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중략) "경은 부근에서 군사 6,000인을 뽑아 나누어 편성하여 진도(珍島)를 공격하여 점령하라." (중략) 부위병(府衛兵, 정규군)을 사열하였는데 정원을 채우지 못하였다. '''이에 문,무 산직(散職)[* 관직에 나아가지 않은 양반], 백정(白丁)[* 평시에 군역의 의무가 없던 일반 농민], 잡색(雜色)[* 군역의 의무가 없는 천민 집단] 및 승도(僧徒, 승려)를 아울러 사열함으로써 이를 충원하였다.''' >ㅡ 1271년 4월 ㅡ >[[http://db.history.go.kr/id/kr_027r_0040_0010_0010|원이 총관 차쿠를 보내 전함의 건조를 감독하게 하다]] >원종(元宗) 15년(1274) 5월에 동정군(東征軍, 일본 원정군)을 뽑았는데, '''각 영부(領府)에서 동반(東班, 문관)의 산직인(散職人) 및 백정(白丁)을 다투어 붙잡아 신고하였다. 혹은 사노(私奴)를 잘못 붙잡은 자도 있었다.''' >ㅡ 1274년 5월 ㅡ >'''"저희나라는 원래 군인과 민간인을 구별하지 않는 터라 그들을 몇 달 동안이나 부역시킨다면 농사일은 어떻게 될지 우려됩니다."''' >ㅡ 1274년 2월 ㅡ >제주(濟州) 다루가치(達魯花赤, 감독관)가 사자를 파견해 수졸(戍卒)을 보내달라고 독촉하자 왕이 김광원(金光遠) 등에게 명하여 '''4령(領, 약 4,000명)의 병력을 징발하게 했다. 심지어 왕을 곁에서 시종하는 겸직 관리라도 남김없이 뽑아들인 다음 장군 양공적(梁公勣) 등으로 하여금 인솔해 가도록 했다.''' >ㅡ 1275년 8월 ㅡ >[[http://db.history.go.kr/id/kr_029r_0010_0060_0060|동정원수부에서 전함 건조 명령을 내리다]] >탐라와 진도(珍島)를 함락시킬 때 상국(上國)의 군대에게 포로가 된 자 중에서 도망한 자가 있으면 추쇄하는 것이 당연합니다만, 함락된 뒤에 함께 부역한 '''평민(平民)을 포로라고 거짓말 하면서 강제로 노역에 충당시킨 것은 매우 곤란한 일이니 금지시켜 주기 바랍니다.''' >ㅡ 1278년 7월 ㅡ >"현재 탐라(耽羅)를 수비하고 있는 우리나라 군사 1천 명은 앞서 일본 정벌 때에 본국에서 차출한 병력 5,300명 가운데 일부입니다. '''우리나라는 땅이 좁고 인구가 드물어 군인과 민간인의 구별이 없는 터에,''' 다시 정토군(征討軍) 4,700명을 더 차출한다면 도저히 그 수를 채울 수가 없을 것이 우려 됩니다." ... (중략) ,,, "하물며 지금 새로 '''징집한 군사 4,600명은 애당초 갑옷과 병기가 아무 것도 없으니 무엇으로 자기 몸을 방비할 수 있겠습니까?"''' >ㅡ 1280년 11월 ㅡ >충렬왕(忠烈王) 9년(1283) 3월에 '''중방(重房)에서 산직(散職)·학생(學生)·백정(白丁)을 조사하여 동정군(東征軍)에 충당하였는데, 때때로 집을 버리고 도망하는 자가 있었다.''' 중방에서 요청하기를, "전정(田丁)을 빼앗아 종군(從軍)하는 자에게 주고, 이웃에서 고발하지 않으면 백금(白金) 1근(斤)을 징수하고, 집에 숨겨준 자는 백금 2근을 징수하십시오."라고 하였다. >ㅡ 1283년 3월 ㅡ >원(元)에서 단사관(斷事官) 소독해(蘇獨海)를 보내와 시찰하고, 아울러 '''일본을 정벌할 함선의 건조 상황을 감독하게 하였다.''' >ㅡ 1285년 11월 ㅡ >[[http://db.history.go.kr/id/kr_030r_0010_0120_0020|원 중서성에서 병선 건조 감독관을 보내다]] >[[http://db.history.go.kr/id/kr_030r_0010_0120_0030|송분을 경상도 조선도지휘사로 삼다]] >요동(遼東, [[랴오닝]])에 기근이 들자 원(元)에서 장수지(張守智) 등을 보내어 본국으로 하여금 군량 10만 석을 거두어 요동(遼東)으로 옮기게 하였다. .... (중략) ....감찰사승(監察司丞) 여문취(呂文就)와 직사관(直史館) 진과(陳果) 등을 파견하여 '''배 483척과 선원 1,314명을 동원하여 쌀 64,000석(石)을 개주(盖州, 랴오닝성 가이펑)로 운송하게 하였다.''' >ㅡ1289년 2~3월 ㅡ >카이두(海都)의 군사들이 원나라 변방(邊方)을 침범하므로 황제가 친히 정벌에 나서고자 아단부카(阿旦不花)를 보내 군사를 징발하게 했다. '''홍자번(洪子藩)과 조인규(趙仁規) 등으로 하여금 봉은사(奉恩寺)에 집결해 군사를 모병하게 하는 한편 각 도(道)에서도 군사를 징발하게 했다.''' 인후(印侯)와 김흔(金忻)을 시켜 큰 네거리에서 군사를 검열하게 했다 >ㅡ 1289년 7~8월 ㅡ >나유(羅裕)가 개주(盖州)에서 돌아와서 말하기를, '''“군량을 수송하던 선박 중에서 부서진 것이 44척, 바람을 만나 유실된 것이 9척, 쌀 중에서 침몰된 것이 5,305석(石), 양식이 모두 떨어져서 훔쳐 먹은 것이 908석 4두(斗), 익사자 119명, 병사자 4명, 도망자 67명, 행방불명자 86명입니다.”'''라고 하였다. >ㅡ 1289년 10월 ㅡ >[[http://db.history.go.kr/id/kr_030r_0090_0070_0010|원이 홍바투르를 보내 일본 정벌을 위한 전함 건조 등을 감독하게 하다]] >갑진일. 원(元)의 선정원(宣政院)에서 사람을 보내와서 선박 건조를 독촉하였다. 당시에 황태후가 불사(佛寺, 절)를 지으려고 하자 홍복원(洪福源)의 손자인 홍중희(洪重喜)와 홍중경(洪重慶) 등이 아뢰기를, “백두산(白頭山)에는 좋은 목재가 많습니다. 만약 심양군(瀋陽軍) 2,000명을 뽑아 보내어 벌목하고 압록강으로 떠내려 보낸 다음, 고려를 시켜 배로 실어 수송하게 하면 편리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요양행성]](遼陽行省) 선사(宣使) 유현(劉顯) 등을 보내와서 '''고려에서 배 100척을 만들고 쌀 3,000석을 실어 나르게 하였으므로 그 폐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이때 두 궁궐의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배를 만드는 공사도 또한 급하여, 서해도(西海道)와 교주도(交州道), 양광도(楊廣道) 백성들이 더욱 그 피해를 입었다.''' >ㅡ 1309 3월 ㅡ >기사일. 원(元) 추밀원(樞密院)이 수군천호(水軍千戶) 상중신(常仲信)을 보내와서 '''선박 건조를 독촉하였다.''' >ㅡ 1309년 4월 ㅡ}}}}}}}}}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